Suminagashi: Alternating Ink and Surfactant Draw Rings on Water

엷은 갈색 종이에 검은 서예 글씨가 쓰여 있고, 그 주변으로 먹빛과 옅은 회색의 물결무늬가 겹겹이 흐르는 13세기 일본 시가집 페이지
글씨 뒤의 먹빛 띠는 붓으로 종이에 하나씩 그린 선이 아니다. 물 위에서 퍼지고 밀려난 먹의 경계를 종이가 접촉 한 번으로 떠온 흔적이다. 13세기 『신고킨와카슈』의 스미나가시 장식지 · Public Domain Mark 1.0 · Source

Artifact

스미나가시(墨流し)는 말 그대로 ‘먹을 흘려보내기’다. 얕은 그릇에 맑은 물을 담고, 끝이 뾰족한 두 붓 가운데 하나에는 먹을, 다른 하나에는 물과 계면활성제 용액을 묻힌다. 두 붓을 수면의 같은 부근에 번갈아 살짝 대면 검은 원과 먹이 없는 원이 교대로 퍼지며 수십 겹의 불규칙한 동심원을 만든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보존가 시연에서는 먹 붓과 물·계면활성제 붓을 차례로 접촉한 뒤, 입김이나 부채로 원을 일그러뜨리고 종이를 수면 위에 조심스럽게 놓는다. 종이를 벗기면 떠 있던 무늬가 그대로 옮겨지고, 물 위의 원본은 사라진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스미나가시 표본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Observation

계면활성제는 수면의 국소 표면장력을 낮춘다. 새로 닿은 낮은 표면장력 영역과 주변의 높은 영역 사이에는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가 표면을 따라 흐름을 만든다. 이 마랑고니 흐름이 앞서 떠 있던 먹을 바깥쪽으로 밀어 얇은 고리로 편다. 먹과 맑은 용액을 번갈아 대는 동안 각 접촉은 앞선 경계를 지우지 않고 다음 띠를 밀어 넣는다.

원은 완성된 뒤에도 고정되지 않는다. 숨, 부채, 물그릇의 진동과 작은 먼지가 선을 휘고 끊는다. 2024년 마블링 유체역학 연구는 무늬가 안료–공기, 안료–물, 공기–물 사이의 세 계면장력과 점성, 확산의 균형에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장인은 결과의 방향을 만들지만 모든 선의 좌표를 미리 지정하지는 않는다.

Multiple Lenses

선 대신 경계를 이동시키는 렌즈

종이 위의 드로잉은 보통 붓끝이 지나간 궤적을 남긴다. 스미나가시의 붓은 수면의 한 점을 반복해서 건드릴 뿐이다. 보이는 선은 붓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표면장력 영역이 앞선 먹을 밀어낸 경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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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색도 재료가 되는 렌즈

두 번째 붓은 흰 안료를 놓지 않는다. 먹이 퍼질 수 없는 영역을 밀어 넣어 종이의 바탕색이 나중에 흰 고리로 남게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자료에는 전통적인 음영 공간을 만드는 데 무환자나무 껍질 추출물을 쓴 조제법도 기록되어 있다. 빈 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백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확보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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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표면을 인쇄판으로 보는 렌즈

수면은 단단한 판처럼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찍어내지 못한다. 종이가 닿는 순간 먹이 흡수되고 배열이 무너지므로 각 결과는 한 번뿐인 모노타이프다. 인쇄판이 사물이라기보다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된 액체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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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와 교섭의 렌즈

장인은 붓의 위치, 접촉 순서, 먹의 농도와 입김을 선택한다. 그러나 물의 경도, 온도, 먼지와 이미 생긴 표면 흐름은 같은 동작을 다른 결과로 바꾼다. 제작은 명령을 정확히 실행시키는 일이 아니라 반응을 관찰하며 다음 접촉을 조정하는 대화에 가깝다.

Related Concepts

  • 피드백 (Feedback) — 현재 결과를 다시 입력으로 삼아 다음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 창발 (Emergence) — 국소적인 상호작용에서 미리 직접 지정되지 않은 전체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Twist

스미나가시에서 가장 결정적인 붓질은 종이에 닿지 않는다. 장인은 물 위의 임시 표면에 조건을 놓고, 종이는 완성된 그림을 받는 바탕이 아니라 그 표면을 끝내는 도구가 된다. 인쇄하는 순간 원본이 파괴되므로 복제와 소멸이 같은 사건이다.

또한 우연은 장인의 통제 밖에서 난입하는 잡음만이 아니다. 입김으로 일부러 원을 흔들고, 물의 반응을 기다린 뒤 다음 붓을 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성은 작업 재료로 편입된다. 완성도는 우연을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우연을 남길지 판단하는 감각에 놓인다.

Core Question

손이 직접 선을 그리지 않고 먹과 계면활성제의 차이가 서로를 밀어낸 궤적을 종이가 한순간에 떠간다면, 무늬의 저자는 붓을 든 사람일까 물의 표면일까?

대리석 무늬를 빗으로 조직하는 에브루

터키와 페르시아 계통의 에브루는 점성이 있는 바탕액에 안료를 띄우고 송곳이나 빗으로 직접 끌어 꽃과 돌무늬를 만든다. 스미나가시는 주로 맑은 물에서 표면장력과 바람에 더 많은 운동을 맡긴다. 두 공예의 차이는 ‘물 위에 색을 띄운다’보다, 장인이 흐름에 얼마나 직접적인 좌표를 부여하는가에 있다.

식물의 표면을 금속판으로 옮기는 자연인쇄

Alois Auer의 자연인쇄는 잎을 납판에 눌러 표면의 물리적 압흔을 얻고 그것을 금속판으로 복제했다. 자연인쇄가 이미 존재하는 표면을 접촉으로 옮긴다면, 스미나가시는 접촉 직전까지 움직이는 표면을 한순간에 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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