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vet worm slime

젖은 나무 표면 위를 기어가는 짙은 청회색 벨벳웜 Euperipatoides rowelli

호주 남동부에 사는 벨벳웜 Euperipatoides rowelli*. Wikimedia Commons, Alan Couch, CC BY 2.0. 사진은 몸과 짧은 다리, 더듬이를 보여 주지만 머리 양옆의 점액 분사구, 발사되는 두 줄기의 궤적, 점액 속 나노구조나 먹이가 버둥거릴 때의 섬유 형성은 보여 주지 않는다.*

Artifact

벨벳웜은 이름과 달리 지렁이도 애벌레도 아닌 유조동물문(Onychophora)의 포식자다. 천천히 걷고 시력도 정밀하지 않지만, 머리 양옆의 변형된 다리인 구강 유두에서 끈적한 점액 두 줄기를 뿜어 빠른 곤충과 거미를 묶는다. 고속 촬영에서는 이 유연한 분사관이 초당 약 30–60회 좌우로 흔들린다. 근육이 매번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흐르는 액체와 탄성 있는 관이 서로 밀어내며 만드는 수동적 탄성유체 불안정성이다. 두 줄기는 공중에서 교차하며 무질서한 그물을 펼친다.

분사 직후의 점액은 아직 점성이 큰 액체다. 단백질과 지질은 약 75나노미터 크기의 균일한 나노구체를 이루어 저장되어 있다. 먹이가 몸을 비틀고 다리를 당기면 점액에 전단력이 걸리고, 나노구체가 풀리면서 단백질은 긴 미세섬유로 모인다. 물과 지질은 바깥으로 밀려나 일종의 피막을 만든다. 2022년 연구는 저장 점액 안에 갇힌 인산염·탄산염과 분사 뒤의 중화 반응도 빠른 건조와 경화를 돕는다는 모델을 제안했다.

따라서 그물은 벨벳웜이 완제품으로 발사하는 물건이 아니다. 포식자는 섬유가 될 수 있는 액체와 넓게 뿌리는 운동을 준비하고, 먹이는 탈출하려는 몸짓으로 마지막 가공을 한다. 움직일수록 점액이 늘어나고 섬유가 생기며, 수초에서 1분 사이 고무 같은 상태를 거쳐 단단하고 유리질에 가까운 망으로 바뀐다. 도망치기 위한 힘이 구속 장치의 조립 공정에 편입된다.

Observation

이 점액의 낯선 점은 ‘강한 접착제’라는 결과보다 강도가 나타나는 순서에 있다. 저장기관 안에서는 흐를 수 있어야 하고, 가느다란 관을 통과할 때 막히지 않아야 하며, 표적에 닿은 뒤에만 섬유가 되어야 한다. 재료의 성질은 분자 목록에 완성되어 있지 않고 저장, 분사, 전단, 건조라는 사건의 연쇄에 분산되어 있다.

먹이의 몸부림은 단순히 포획 장치가 견뎌야 할 외력도 아니다. 그 외력이 액체를 늘이고 섞어 경화를 촉진한다. 보통 장치는 사용자가 가하는 힘을 오차나 마모로 취급하지만, 이 그물은 저항을 제작 에너지로 바꾼다. 공격자와 피공격자의 행동이 하나의 재료 공정에 서로 다른 역할로 들어간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단단한 섬유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말린 실을 물에 몇 시간 담그면 다시 풀리고, 단백질과 지질은 원래와 비슷한 나노구체를 형성한다. 회수한 용액에서도 다시 섬유를 뽑을 수 있었다. 생태적으로는 한 번 쓰는 무기지만, 재료과학적으로는 상온에서 조립과 해체를 왕복하는 재활용 가능한 고분자 시스템이다.

Multiple Lenses

유체역학 — 조종하지 않고 넓게 뿌리는 관

유연한 분사관과 빠른 흐름이 만드는 불안정성이 점액 줄기를 스스로 진동시킨다. 정밀 조준 근육 대신 수동적 흔들림을 이용해 앞쪽 공간에 넓은 그물을 친다. 제어의 일부를 재료와 흐름의 불안정성에 맡긴 셈이다.

Related Concepts: fluid–structure interaction · elastic instability

재료과학 — 액체 안에 접어 둔 섬유 가능성

나노구체는 단백질과 지질을 흐르는 상태로 보관하고, 전단이 가해질 때 섬유 형성 경로를 연다. 강도는 고정된 성질이 아니라 특정 힘과 환경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조립 상태다.

Related Concepts: self-assembly · stimuli-responsive material

행동생태학 — 저항을 포획 공정에 고용하기

먹이는 가만히 있어도 점액의 접착성 때문에 붙잡히지만, 몸부림칠수록 실을 더 길게 뽑고 얽힌다. 포식자는 상대의 가장 예측 가능한 행동, 즉 탈출을 막는 대신 자기 장치의 작동 단계로 이용한다.

Related Concepts: predation · extended phenotype

순환 설계 — 굳었지만 되돌릴 수 있는 재료

산업용 열경화성 수지는 강해지는 대신 원래 분자로 돌아가기 어렵다. 벨벳웜 점액은 물에서 해체되고 다시 섬유를 만들 수 있다. 성능과 되돌림을 반드시 반대값으로 놓아야 하는지 묻게 한다.

Related Concepts: reversible polymer · circular design

Twist

벨벳웜이 그물을 ‘쏜다’고 말하면 이미 짜인 망이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발사되는 것은 아직 액체인 전구체다. 그물의 최종 제작자는 포식자 혼자가 아니다. 분사관의 수동 진동이 공간을 훑고, 공기가 물을 빼앗고, 먹이의 몸부림이 전단력을 보탠 뒤에야 단단한 섬유망이 완성된다.

그래서 이 무기의 잔혹함은 힘이 세다는 데만 있지 않다. 탈출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넘어, 탈출 시도 자체가 감옥을 더 짜 준다. 그러나 같은 구조는 물을 만나면 다시 풀린다. 한 장면에서는 저항을 처벌하는 비가역적 덫처럼 보이고, 다른 시간 규모에서는 반복 조립 가능한 재료처럼 보인다. ‘단단해졌다’와 ‘되돌릴 수 없다’는 같은 문장이 아니었다.

Core Question

포획 장치가 먹이의 탈출 운동을 재료를 굳히는 힘으로 사용한다면, 구속의 힘은 포식자가 준비한 물질에 있을까 포획된 몸이 계속 공급하는 움직임에 있을까?

중국식 손가락 덫은 양끝을 잡아당길수록 대나무 편조의 각도가 좁아지고 원통의 지름이 줄어 손가락을 더 조인다. 벨벳웜 점액이 저항의 전단력으로 재료 상태를 바꾼다면, 손가락 덫은 같은 저항을 기하 변화로 바꾼다. 둘 다 탈출 방향을 장치의 강화 방향으로 번역한다.

먹장어 점액은 세포 안에 감긴 긴 단백질 실 타래가 바닷물의 흐름에서 순식간에 풀리고 점액과 함께 거대한 망을 만든다. 벨벳웜이 먹이를 붙잡기 위해 공기 중에서 섬유를 조립한다면, 먹장어는 포식자의 아가미를 막기 위해 물속에서 저장된 실을 전개한다. 하나는 새로 뽑는 실이고 다른 하나는 미리 감아 둔 실이다.

거미줄은 몸 안의 액체 단백질을 방적관의 좁은 통로와 당기는 힘으로 정렬해 섬유로 만든다. 거미가 방적 속도와 배치를 주도하는 것과 달리, 벨벳웜은 표적이 가하는 뒤늦은 힘까지 방적 공정에 끌어들인다. 같은 액체-섬유 전환이 서로 다른 행위자에게 배분된다.

토마스 사라세노의 Hybrid Webs는 서로 다른 사회성을 가진 거미들이 열린 프레임 안에서 차례로 거미줄을 덧붙이도록 한 공동 제작 작업이다. 점액 그물에서는 포식자와 먹이가 비대칭적으로 한 구조를 만들고, 사라세노의 작업에서는 여러 거미의 이동과 시간 차이가 저자성 자체를 흔든다. 완성된 망보다 누가 어떤 운동을 보탰는지가 작품의 일부다.

에바 헤세의 Expanded Expansion (1969)은 라텍스를 먹인 치즈천을 단단한 유리섬유 기둥 사이에 늘어뜨렸다. 세월이 지나며 라텍스는 굳고 어두워지고 약해졌다. 벨벳웜 섬유가 물로 풀려 다시 조립될 수 있는 것과 달리, 헤세의 라텍스는 재료의 노화가 작품의 형태와 보존 가능성을 비가역적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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