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erary hatchment

영국 스토크 포지스 세인트 자일스 교회 벽에 걸린 조지 하워드의 마름모꼴 장례 해치먼트

조지 하워드의 장례 해치먼트가 현재 세인트 자일스 교회에 걸려 있는 모습. MaratOrbel, Wikimedia Commons, CC0 1.0. 사진은 물체가 도착한 교회 내부를 보여 주지만, 처음 유족의 집 문 위에 걸렸던 위치와 당시 행인이 검정·흰색 배경을 읽던 장면은 보여 주지 않는다.

Artifact

장례 해치먼트는 캔버스나 천 위에 가문의 문장을 그려 마름모꼴 틀에 건 표지였다. 영국의 관습에서 이것은 처음부터 교회 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문장을 사용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죽으면 해치먼트를 고인의 집 정문 위에 내걸어, 거리의 사람에게 그 집에 죽음이 생겼음을 알렸다.

애도 기간이 지나면 판은 내려졌지만 버려지지 않았다. 고인이나 가문과 연결된 교구 교회로 옮겨 벽 높은 곳에 다시 걸렸다. 같은 물체가 사적 주택의 시한부 부고에서 공적 예배 공간의 장기 기념물로 역할을 바꿨다. 해치먼트가 보존한 것은 문장만이 아니라, 물체가 이동하며 통과한 애도의 시간표였다.

Observation

Heraldry Society는 해치먼트를 대략 4피트 크기의 마름모꼴 문장화로 설명한다. 관습은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자리 잡았고, 판은 장례 뒤 집 정문 위에 걸렸다가 교회로 옮겨졌다. Building Conservation의 보존 개관은 집 밖 전시 기간이 길게는 약 12개월이었다고 정리한다.

배경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죽고 다른 사람이 살아 있으면 문장 뒤의 검정과 흰색 영역이 어느 배우자가 죽었고 누가 남았는지 나타냈다. 두 배우자가 모두 죽은 경우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배경 전체가 검어질 수 있었다. 행인은 이름을 읽지 않아도 문장과 색의 분할로 죽음과 생존 관계를 해독했다.

재료는 영구성을 보장하지 않았다. 해치먼트는 캔버스, 헤시안이나 캘리코 같은 천에 그려졌고, 비와 햇빛을 맞는 집 외벽에 먼저 놓였다. 교회로 들어온 뒤에도 습기, 먼지, 느슨해진 천과 변색을 견뎌야 했다. 보존 현장에서 발견되는 접힘과 수리 흔적은 임시 표지가 예상보다 훨씬 긴 생애를 얻었다는 증거다.

Historic England의 교회 목록에는 18세기와 19세기 인물의 장례 해치먼트가 건축물 내부 구성의 일부로 반복해서 기록된다. 개인의 죽음을 알린 이동식 판이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의 역사적 실내를 설명하는 고정 자산이 된 셈이다.

Multiple Lenses

매체사 — 같은 그림이 주소를 바꾸며 장르를 바꾼다

집 정문 위에서 해치먼트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알리는 표지였다. 교회 벽에서 그것은 이미 지나간 사람과 가문을 회고하는 기념물이 됐다.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아도 위치와 관람자가 바뀌면 ‘부고’가 ‘아카이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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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 — 검정과 흰색은 남은 관계를 그린다

해치먼트는 죽은 사람 하나만 묘사하지 않았다. 부부 문장의 좌우와 배경색을 나눠 누가 죽고 누가 살아 있는지 표시했다. 애도 표지는 부재를 알리는 동시에 생존자의 사회적 위치를 다시 그리는 관계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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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연구 — 지속성은 물체보다 재배치에 있다

해치먼트는 집에서 교회로 옮겨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동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누군가 받아 걸고, 목록에 넣고, 손상된 천을 지지하고, 건물의 역사로 다시 설명해야 했다. 기억은 물체 안에 고정된 내용이라기보다 물체를 다음 장소에 편입시키는 연속된 관리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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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 — 누구의 죽음이 공공 표지가 될 수 있었는가

해치먼트는 모든 사람의 부고가 아니었다. 문장을 보유한 가문, 집의 정면, 연결된 교회와 보존 자원을 전제로 했다. 오늘날 교회에 남은 판은 과거의 애도 관습뿐 아니라 어떤 계층의 죽음이 거리와 제도의 벽을 차지할 수 있었는지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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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st

해치먼트의 가장 긴 생애는 애도가 끝난 뒤 시작됐다. 집 앞에서 가장 시급할 때는 임시 표지였지만, 교회로 옮겨진 뒤에는 원래 알림을 받을 필요가 없던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다. 시효가 끝난 정보가 장소를 바꾸자 역사 자료가 됐다.

그리고 ‘보존’은 원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교회 벽에 건 순간 해치먼트는 더 이상 현재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기능을 잃은 덕분에 오히려 물체가 남았다. 여기서 기억은 동일한 사용의 지속이 아니라, 사용을 끝내고 다른 제도가 받아들이는 변환이다.

Core Question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려고 집 문 위에 잠시 건 판이 교회로 옮겨져 여러 세대 동안 남는다면, 기억의 연속성은 죽은 사람과 가문에 있었을까, 이동하는 물체에 있었을까, 아니면 그것을 다시 걸고 보존한 제도에 있었을까?

묘비는 대개 매장 장소에 고정되어 고인의 위치를 표시한다. 해치먼트는 집에서 시작해 교회로 이동하며, 한 사람의 주소와 애도 기간을 통과한 뒤에야 장기 기념물이 된다. 하나는 처음부터 장소를 붙잡고, 다른 하나는 장소를 바꾸며 의미를 축적한다.

장례 행렬의 문장 깃발은 관을 앞서거나 곁에서 이동하며 의례가 끝나면 역할을 마친다. 해치먼트도 문장을 운반하지만, 행렬의 시간 대신 집 외벽에서 교회 벽으로 이어지는 더 느린 이동을 가진다.

아티팩트 245의 카바트 가면은 한 번의 불춤 뒤 사라져야 생애 규칙을 완성한다. 해치먼트는 임시 사용 뒤 제도에 편입되며 오래 남는다. 둘 다 보존이 물체를 구하지만, 하나에서는 예정된 소멸을 어기고 다른 하나에서는 예정된 이관을 완성한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은 비스듬한 시점에서만 드러나는 왜상 해골로 죽음을 시야의 조건에 숨긴다. 해치먼트는 반대로 집 정면에 죽음을 공개하고, 검정과 흰색의 분할로 남은 배우자까지 사회적으로 읽게 한다. 하나는 보는 위치를 시험하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가 공유한 해독 규칙을 시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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