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ērōtērion / κληρωτήριον — 시민의 신분표와 흑백 주사위를 결합해 배심원과 공직자를 추첨한 아테네의 배정 장치
Artifact
고대 아테네에서 배심원이나 일부 공직을 정하는 일은 후보에게 표를 가장 많이 준 사람을 고르는 선거와 달랐다. 시민들은 자기 이름·거주 구역·소속이 적힌 신분표인 피나키온(pinakion)을 제출했고, 담당자는 그것을 클레로테리온이라는 홈이 파인 석판의 세로 열에 꽂았다. 같은 높이에 놓인 이름표들은 하나의 가로줄을 이루었다.
석판 옆에는 흑백 주사위 또는 큐브를 넣는 관이 있었다. 주사위를 하나씩 떨어뜨려 흰색이 나오면 해당 높이의 가로줄을 선택하고, 검은색이면 그 줄을 건너뛰었다. 필요한 인원이 찰 때까지 위에서 아래로 반복했다. 누가 선발될지는 이름표가 놓인 자리와 주사위 순서가 만나는 순간에만 정해졌다.
Observation
무작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로줄을 선택했다
클레로테리온은 이름 하나를 매번 뽑지 않았다. 흰 주사위 하나가 나오면 여러 세로 열에서 같은 높이에 놓인 시민들이 함께 선발됐다. 우연은 개인을 고립시켜 뽑기보다 사전에 배열된 집단 구조를 가로질렀다.
시민의 정체와 운은 서로 다른 부품에 놓였다
피나키온은 누가 후보인지 증명했다. 흑백 주사위는 어느 줄이 채택될지 정했다. 신분 확인과 선택 판단을 같은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이름표·석판·주사위 관이라는 서로 다른 물체에 나눠 놓았다.
결과보다 절차가 먼저 공개됐다
누가 뽑힐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어떤 열에 표를 넣고 어떤 색이 선택을 뜻하며 주사위를 어떤 순서로 방출하는지는 볼 수 있었다. 공정성은 결과의 이유를 후보의 능력으로 설명하는 대신, 누구도 특정 이름을 겨냥하기 어려운 절차를 공동으로 관찰하는 데 놓였다.
남은 석판만으로는 기계를 완전히 볼 수 없다
현재까지 완전한 클레로테리온은 발굴되지 않았다. 박물관의 파편에는 이름표 홈과 부속물을 붙였던 흔적이 남지만 주사위 관과 방출 장치의 세부는 사라졌다. 연구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 여러 파편과 실제 크기 복제품을 맞춰 작동을 시험한다.
Multiple Lenses
민주주의 — 대표는 선택받은 사람인가 뽑힌 시민인가
선거는 지지와 경쟁을 집계하지만 추첨은 자격 있는 시민들 사이의 순서를 무작위화한다. 클레로테리온은 통치 능력을 인기나 재산의 신호로 평가하기보다, 공적 역할이 여러 시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을 제도화했다. 다만 그 ‘시민’ 범위 자체가 여성·노예·외국인을 배제했다는 한계는 장치 밖에 남아 있었다.
Related Concepts: Nikolaos Papazarkadas의 새 명문 클레로테리온 연구 — 추첨이 고대 민주정의 핵심 제도였다는 맥락과 실제 석판 파편을 분석한다.
인터페이스 — 공정성은 만질 수 있는 순서가 된다
후보의 이름표를 상자에서 섞고, 지정 열에 끼우고, 흑백 주사위를 관에 넣고, 하나씩 방출한다. 추상적인 ‘무작위성’은 여러 사람이 차례로 확인할 수 있는 손동작으로 번역된다. 인터페이스가 결과를 설명하는 대신 결과가 조작되기 어려운 경로를 보여 준다.
Related Concepts: CNRS의 실물 크기 복원 실험 — 문헌과 파편을 바탕으로 석판·이름표·관을 제작해 실제 추첨 순서를 시험한다.
분류 — 열은 차이를 지우지 않고 우연에 넣는다
피나키온은 아무 홈에나 꽂히지 않고 시민의 소속 구획에 대응하는 열로 들어갔다. 무작위 선택 앞에서도 사회적 분류는 사라지지 않았다. 장치는 분류된 집단을 유지한 채 각 가로줄에서 여러 구획을 함께 선택했다.
Related Concepts: University of Reading의 작동 복제품 — 열, 시민 신분표, 흑백 공과 가로줄 선발의 관계를 설명한다.
검증 — 고장과 조작은 같은 질문이 아니다
주사위 관이 막히거나 이름표가 잘못 꽂히는 것은 기계적 오류다. 특정 순서로 주사위를 넣거나 표 배치를 조작하는 것은 정치적 개입이다. 공개된 장치는 두 위험을 모두 없애지 않지만, 어느 단계에서 이상이 생겼는지 여러 사람이 지적할 수 있게 한다.
Related Concepts: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치체제》 63장 — 법정 배심원 추첨의 상자·신분표·구획과 절차를 동시대에 가까운 문헌으로 기록한다.
Twist
무작위 선택은 흔히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왜 이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능력, 지지, 판단의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클레로테리온은 바로 그 설명 불가능성을 정치적 장점으로 바꿨다. 특정 후보를 향한 선호를 제거하면, 결과의 정당성은 사람을 평가한 이유가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전 누구에게도 유리하게 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그러나 우연만으로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누가 이름표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어느 열에 들어가는지, 누가 주사위를 준비하고 방출하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한다. 클레로테리온은 권력을 없애지 않고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물체와 순서 위에 펼쳐 놓는다.
따라서 이 장치는 ‘결정을 기계에 맡긴’ 자동화라기보다 판단과 우연의 경계를 공개적으로 배치한 시민 인터페이스다. 흰 주사위는 사람의 가치를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미리 정해진 자격과 배열 속에서 한 줄이 공적 역할을 맡을 차례라고 말한다.
Core Question
시민의 이름표를 열에 꽂고 흑백 주사위 하나로 가로줄 전체를 받아들이거나 버릴 때, 공정성은 누구를 뽑았는지 설명하는 데 있을까 누구도 결과를 미리 정할 수 없는 절차를 함께 보는 데 있을까?
Related Works / Contrast Cases
John Cage, Music of Changes (1951)
공통점: Cage는 《주역》의 우연 조작을 사용해 음, 길이, 강약과 밀도를 배열했다. 클레로테리온처럼 가능한 요소를 먼저 표와 규칙에 배치하고, 개별 선택을 작가나 관리자의 순간적 취향에서 분리한다.
결정적 차이: Music of Changes의 우연은 완성될 악보의 구성을 정하며 청중에게 정치적 권한을 배분하지 않는다. 클레로테리온의 주사위는 실제 시민에게 법정과 공직의 권한을 부여한다.
질문을 선명하게 하는 점: 우연이 창작자의 의도를 제한할 때와 공적 권력의 편파성을 제한할 때, 같은 절차가 서로 다른 책임을 만드는 이유를 비교하게 한다. Northwestern University John Cage Collection
Hans Haacke, MoMA Poll (1970) — contrast case
공통점: 투명한 투표함과 정해진 절차를 전시장에 놓아 참여자의 개별 행위가 집단적 결과로 바뀌는 과정을 공개한다.
결정적 차이: MoMA Poll은 방문객이 정치적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를 선택하고 그 의사를 집계한다. 클레로테리온은 시민의 선호를 묻지 않고 자격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역할을 무작위로 배정한다.
질문을 선명하게 하는 점: 민주적 정당성이 의사를 정확히 세는 데서 오는지, 누구도 선발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데서 오는지 대비시킨다. MoMA의 《Information》 회고
Further Reading
- CNRS, 「The Machine that Selected the Citizens of Athens」 — 문헌·파편·실물 복제품을 결합해 추첨 순서를 재현한다.
- University of Reading, 「Kleroteria」 — 시민 신분표, 세로 열, 흑백 공과 가로줄 선발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 Nikolaos Papazarkadas, 「A New Inscribed Kleroterion from Hellenistic Athens」 — 새로 발견된 명문 석판과 헬레니즘기 추첨 제도를 분석한다.
- Sterling Dow, 「Aristotle, the Kleroteria, and the Courts」 —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과 아고라 발굴 파편을 연결한 고전 연구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인의 정치체제》 — 63장부터 법정 배심원 추첨 절차를 상세히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