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quio

오악사카 테후판의 거리에서 여성들이 빗자루와 삽을 들고 흙과 낙엽을 함께 치우는 모습
2018년 오악사카 테후판에서 열린 테키오. 여러 여성이 같은 거리 구간에 흩어져 빗자루와 삽으로 공공 공간을 함께 정비한다. Eduardo Ruiz Mondragón · 2018 · 640×480 · CC BY-SA 4.0 · Source

Artifact

아침에 주민들이 삽, 빗자루와 곡괭이를 들고 모인다. 누군가는 도로의 배수로를 파고, 누군가는 묘지의 풀을 베며, 다른 사람들은 수로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작업이 끝나도 일당은 지급되지 않는다. 대신 길과 물과 공동 공간이 남는다.

이 공동 노동을 오악사카에서는 테키오(tequio)라고 부른다. 말은 나우아틀어 tequitl, 곧 노동 또는 공물에서 왔다. 형태는 마을마다 다르지만, 공동체 총회나 지방 당국이 필요를 정하고 주민이 노동·도구·재료를 보태 공익 시설을 만들거나 유지한다는 구조가 반복된다.

Observation

테키오를 자원봉사라고 번역하면 중요한 긴장이 사라진다. 자원봉사는 개인이 참여 여부를 선택하는 선행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오악사카의 여러 공동체에서 테키오는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함께 작동하는 규범 체계 안에 놓인다. 묘지 청소, 도로 보수, 학교와 축제 준비에 참여하는 일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오악사카주 헌법은 공동체와 지방 당국이 각 민족의 관습에 따라 테키오를 보존하도록 하며, 총회가 합의한 공익 노동을 법이 지방세 납부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돈 대신 하루의 몸과 시간을 공공 기여로 계산할 수 있는 셈이다.

세금이 하루의 몸이 될 때

삽질한 하루와 납부한 돈은 어떤 조건에서 같은 기여가 될까?

현금 세금은 납부자의 직업이나 체력과 무관하게 숫자로 이동한다. 테키오는 기여를 현장에 데려온다. 누가 왔는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도구와 식사를 누가 마련했는지가 다른 사람의 눈앞에 남는다. 공공재를 만드는 비용과 공동체 구성원의 몸이 같은 장면에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하루가 모두에게 같은 비용은 아니다. 나이, 장애, 돌봄 책임, 이주 노동과 생계 조건에 따라 현장에 나오는 부담은 크게 달라진다. 노동을 화폐 대신 받으면 기여가 더 직접적으로 보이지만, 각자가 포기한 시간의 차이까지 자동으로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권리가 의무를 통해 보일 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명부보다 출석에서 더 강하게 확인될 수 있을까?

테키오는 도로만 고치지 않는다. 함께 일한 사람, 빠진 사람, 다음 작업을 맡을 사람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노동은 서로를 기억하는 사회적 장부가 된다. 주민은 공공 시설의 사용자인 동시에 그것을 유지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참여는 소속의 증거가 되지만, 불참은 단순한 결석보다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공동체마다 규칙은 다르며 제재·대체 노동·현금 납부를 둘러싼 갈등도 생긴다. 연대가 지속되려면 어느 정도의 의무가 필요하지만, 의무가 강해질수록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의 시민권이 약해질 위험도 커진다.

유지보수가 회의를 계속할 때

길을 함께 고치는 행위는 공사를 끝내는 일일까 다음 합의를 준비하는 일일까?

테키오의 결과는 완공된 시설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작업 구간을 나누고, 부족한 재료를 확인하고, 다음 총회에서 다룰 문제를 발견한다. 배수로가 다시 막히거나 수로가 깨지면 공동체는 같은 장소로 돌아와야 한다. 유지보수는 일회성 선물이 아니라 반복되는 의사결정의 리듬이 된다.

최근 오악사카 주정부도 Tequios Bienestar라는 이름으로 주민 위원회와 공공 기관이 함께 공공 공간을 정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통적 규범이 행정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때, 국가가 재료를 제공하고 주민이 노동을 보태는 협력과 정부 책임의 외주화 사이에는 새로운 경계가 생긴다.

공동 노동이 하나가 아닐 때

같은 삽을 들었다고 모두가 같은 관계로 일하는 것일까?

오악사카의 집단 노동에는 테키오 외에도 가까운 사람들이 일을 되갚는 마노 부엘타, 소규모 상호부조와 축제 노동 등 여러 형태가 있다. 테키오를 하나의 고정된 고대 관습으로 묶으면 마을별 규칙, 우정과 친족 관계, 제재와 갈등이 지워진다.

따라서 테키오의 핵심은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는 아름다운 장면만이 아니다. 누가 필요를 정하고, 누가 의무를 지며, 어떤 대체가 허용되고, 완성된 시설에 대한 권리와 책임이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있다. 공동체는 노동을 통해 결속될 뿐 아니라 노동의 규칙을 놓고 계속 협상된다.

Twist

테키오를 국가가 부족한 곳에서 주민들이 대신 일하는 전통으로만 보면, 공동체는 값싼 노동력으로 줄어든다. 반대로 순수한 연대라고만 부르면 참여의 의무와 불평등한 부담이 보이지 않는다.

테키오는 공공 시설을 생산하는 동시에 시민의 자격을 수행한다. 길과 수로는 노동의 결과물이지만, 누가 공동체의 일원인지 보여 주는 장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임 노동인가 자발적 봉사인가를 고르는 데 있지 않다. 공동체가 필요한 의무를 만들면서도, 그 의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의 소속을 잃지 않는 방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데 있다.

Core Question

시민권이 함께 일한 날들로 확인된다면, 공동체는 사람의 소속과 노동을 어디까지 같은 것으로 셀 수 있을까?

《Touch Sanitation》 — 미얼 레더먼 유켈리스, 1979–1980

공통점

유켈리스는 뉴욕시 위생 노동자 8,500명을 찾아가 악수하고 도시를 살아 있게 해 준 것에 감사를 전했다. 테키오와 마찬가지로 평소 배경으로 밀려나는 청소와 유지보수를 공공적 관계의 중심으로 옮긴다.

결정적 차이

《Touch Sanitation》은 이미 임금을 받는 도시 노동을 보이지 않는 서비스에서 이름과 얼굴을 가진 기여로 바꾼다. 테키오는 주민이 별도의 직업 밖에서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수행하는 노동이다. 하나는 노동자의 존재를 시민에게 보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존재를 노동으로 확인한다.

질문 강화

공공 공간을 유지한 사람을 인정하는 것과, 그 유지 노동을 공동체 소속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어디에서 갈릴까?

Further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