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al treadwheel

높은 칸막이 사이에서 여러 수감자가 거대한 회전 바퀴의 발판을 밟고 올라가는 1817년 삽화
1817년 무렵 런던 브릭스턴 교도소의 트레드휠. 수감자들은 칸막이로 서로 분리된 채 발판을 밟고, 바퀴는 옆으로 이어진다. British Library · c.1817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Source

Artifact

높은 벽 앞에 거대한 바퀴가 누워 있다. 가장자리에는 계단처럼 좁은 발판이 촘촘히 박혀 있다. 수감자들은 칸막이 사이에 한 명씩 서서 돌아오는 발판을 계속 밟는다. 발을 멈추면 아래로 밀려난다. 계속 오르지만 몸은 제자리다. 옆 사람의 얼굴도, 바퀴가 무엇을 돌리는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Observation

영국의 기술자 윌리엄 큐빗이 1818년 무렵 고안한 교도소용 트레드휠은 처음에는 사람의 체중으로 곡식을 갈거나 물을 퍼 올리는 동력 장치였다. 브릭스턴 교도소의 초기 삽화에는 최대 24명이 차례로 바퀴를 밟으며 제분하는 구조가 묘사된다. 산업 기계와 형벌 기계가 아직 같은 축에 연결돼 있던 셈이다.

그러나 트레드휠의 핵심 산출물은 점차 밀가루에서 ‘고된 노동’ 자체로 이동했다. 19세기 영국 의회 기록에서는 이 장치를 잔인하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하는 질문과, 유용한 동력을 얻을 수 있으므로 쓸모없지 않다는 정부의 답변이 맞선다. 1898년의 개혁은 트레드밀을 폐지하고 교도소 노동에 건설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문제는 기계의 효율이 아니라, 고통을 노동으로 부를 수 있는 조건이었다.

닿지 않는 계단

움직임이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않을 때, 노동의 결과는 어디에 남는가?

보통 계단은 높이를 바꾸고, 바퀴는 다른 기계를 움직인다. 트레드휠은 두 약속을 분리한다. 수감자의 몸은 끊임없이 상승 동작을 하지만 공간적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동력이 제분에 쓰이더라도 작업자는 완성된 결과를 보거나 기술을 축적하기 어렵다. 노동과 산출물 사이의 가시적 연결이 끊기면서, 남는 것은 시간표와 피로, 감독자가 셀 수 있는 지속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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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단위

생산물이 사라지면 제도는 무엇을 측정해 형벌이 수행됐다고 판단하는가?

트레드휠은 복잡한 숙련보다 반복 가능하고 비교 가능한 신체 지출을 만든다. 몇 분을 밟았는지, 몇 차례 교대했는지, 규정된 속도를 유지했는지가 기록된다. 작업의 품질보다 견딘 양이 평가 단위가 된다. 이때 피로는 부수 효과가 아니라 행정 가능한 산출물이다. 형벌은 사람의 몸에서 에너지를 빼내고, 그 소모를 시간과 횟수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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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성의 알리바이

같은 고통이라도 기계가 곡식을 갈면 더 정당한 형벌이 되는가?

트레드휠을 둘러싼 논쟁에서 ‘유용한가’는 인도적인가와 자주 뒤엉켰다. 물을 퍼 올리거나 곡식을 갈면 고된 반복이 사회적 생산으로 보인다. 아무 장치에도 연결되지 않으면 노골적인 처벌로 보인다. 하지만 산출물이 생겼다는 사실은 강제, 부상, 지루함과 권리 박탈을 지우지 않는다. 유용성은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기보다 제도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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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이라는 연결축

처벌 장치가 작업 도구가 되려면 사람은 결과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1890년대 영국의 교도소 개혁 논의는 노동이 단순히 몸을 소진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석방 뒤의 생활과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반복이라도 기술, 보수, 선택권, 결과에 대한 이해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진다. 반대로 실제 물건을 생산하더라도 작업자가 결과를 소유하거나 배울 수 없다면 트레드휠의 구조는 남는다. 중요한 차이는 기계가 무언가를 만드는지가 아니라, 노동자가 그 결과의 미래에 포함되는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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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st

형벌용 트레드휠은 쓸모없는 노동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쓸모없기 때문에 오래간 것은 아니다. 곡식을 갈고 물을 올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교도소가 원하는 다른 종류의 산출물을 정확히 만들었다. 정해진 자세, 분절된 시간, 비교 가능한 피로,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반복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이 기계가 생산하지 않은 것은 작업자가 가리킬 수 있는 결과와 미래였다. 대신 제도가 확인할 수 있는 복종의 증거를 생산했다. 노동의 의미는 산출물의 유무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누가 결과를 보고, 이름 붙이고, 사용할 수 있는지가 연결축을 결정한다.

Core Question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노동이 처벌로 인정될 때, 제도는 사람의 피로에서 무엇을 생산했다고 주장하는가?

《유형지에서》 — 프란츠 카프카, 1919

공통점

소설의 형벌 기계는 죄수의 몸에 판결문을 새기며, 처벌 절차를 기술 장치의 반복 운동으로 바꾼다. 트레드휠처럼 몸의 고통이 기계의 정상 작동을 증명한다.

결정적 차이

카프카의 장치는 문장을 몸에 기록해 처벌의 의미를 과잉 가시화한다. 트레드휠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쓰지 않는다. 동일한 동작과 피로만 남겨 개인의 죄목을 지운다.

질문 강화

이 차이는 형벌 기계가 메시지를 전달해서 권력을 갖는지, 아니면 의미 없는 반복을 정상 절차로 만들기 때문에 권력을 갖는지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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