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안에 여러 보조선과 원호가 차례로 그려지고, 눈금 없는 직선자와 컴퍼스의 단계만으로 정오각형의 다섯 꼭짓점이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직선자와 컴퍼스가 원호와 교점을 차례로 만들고, 마지막에 정오각형을 완성한다. 길이를 숫자로 읽는 단계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Jacopo Bertolotti · 2022 · Wikimedia Commons · CC0 · Source

Artifact

나무 막대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모서리는 곧지만 표면에는 숫자도 눈금도 없다. 이 도구로 두 점을 잇는 선은 그을 수 있지만 길이를 읽거나 같은 거리를 옮길 수는 없다. 18~19세기 미국의 한 가정에서 쓰인 이런 자는 고장 난 측정기가 아니었다. 기하학과 항해를 연습하기 위해, 재는 기능을 처음부터 비워 둔 도구였다.

Observation

스미스소니언이 소장한 Copp 가족의 나무 자에는 측정선이 없다. 박물관은 이와 같은 도구가 기하학과 항해에 필요한 곧은 선을 긋는 데 쓰였다고 설명한다. 수학에서는 이를 눈금자보다 직선자(straightedge)라고 부른다. 고전적 작도에서 직선자는 두 점을 잇거나 이미 있는 선을 연장할 수 있을 뿐, 표면에 표시를 남겨 거리를 옮기거나 숫자로 길이를 재서는 안 된다. 컴퍼스는 원과 거리 관계를 맡는다. 이 제한 속에서 정오각형과 수직이등분선은 만들 수 있지만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거나 주어진 정육면체의 부피를 두 배로 만드는 작도는 불가능하다. 1837년 Pierre Wantzel은 이 불가능성이 오랫동안 방법을 찾지 못한 우연이 아니라, 허용된 연산이 만들 수 있는 수의 범위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한

도구에서 기능을 빼면 왜 추론은 더 분명해지는가?

눈금이 있으면 선분을 읽고 값을 옮기는 행동이 너무 쉽게 섞인다. 직선자는 그 지름길을 막아, 어떤 점이 이전 단계의 선과 원에서 실제로 나왔는지 드러낸다. 결과만 같은 도형을 만드는 것과 허용된 단계로 도형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제한은 작업을 불편하게 하지만, 결론 속에 몰래 들어온 측정과 추측을 밖으로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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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종이 위의 선 긋기는 언제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는가?

작도는 한 번의 영감보다 유한한 명령열에 가깝다. 두 점을 잇고, 교점을 찾고, 한 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다음 단계는 앞 단계가 만든 대상만 입력으로 삼는다. 현대 연구는 직선자와 컴퍼스 작도를 제한된 명령을 가진 알고리즘으로 엄밀히 정의하려 한다. 자와 컴퍼스는 전자 계산 장치가 아니지만, 가능한 입력·동작·종료 조건을 정한다는 점에서 작은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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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

답이 없다는 것은 도형의 성질인가, 도구 규칙의 성질인가?

임의의 각 삼등분은 눈금 없는 직선자와 컴퍼스로는 불가능하지만, 자에 두 표시를 넣어 위치를 맞추는 네우시스 작도나 원뿔곡선을 허용하면 가능해진다. 문제의 그림은 그대로인데 인터페이스가 바뀌면 불가능성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만들 수 없다”는 말은 세계에 그 도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한 연산 집합 안에는 그 도형으로 가는 유한한 경로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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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실제 자에 보이지 않는 자국이 있다면 증명은 무너지는가?

현실의 나무 막대에는 끝점과 폭, 흠집이 있다. 사용자는 손가락으로 길이를 기억하거나 연필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수학적 직선자는 무한히 길고 완전히 곧으며 아무 표시도 없는 이상적 도구다. 따라서 작도 규칙은 물건의 물리적 성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이 눈금처럼 쓸 수 있는 우연한 흔적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합의해야 한다. 엄밀함은 도구에 내장된 잠금장치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을지를 공유하는 수행 규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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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st

눈금 없는 자를 눈금자가 발명되기 전의 불완전한 도구로 보면, 기술의 발전은 빈 막대에 숫자를 더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고전 작도에서 눈금의 부재는 부족함이 아니라 방화벽이다. 측정값을 직접 가져오는 길을 닫아 두어, 선과 원의 관계만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검사한다. 도구가 약해질수록 증명의 숨은 입력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제한이 도구 자체에 완전히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눈금자를 뒤집어 숫자를 보지 않고 쓰면 직선자가 되고, 눈금 없는 막대에 표시 하나를 남기면 더 강한 도구가 된다. 같은 물건의 능력은 사용 규칙에 따라 달라진다. 작도는 물체를 사용하는 기술이면서, 가능한 편법을 거절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그래서 직선자가 보여주는 것은 “적은 도구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절약의 미덕만이 아니다. 무엇이 가능한지 묻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하나의 정당한 단계로 셀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도는 전투를 숨긴다가 정보를 제한해 판단 조건을 만들었다면, 직선자 작도는 도구의 능력을 제한해 증명의 세계를 만든다.

Core Question

눈금 없는 직선자의 엄밀함이 물건에 실제로 없는 기능 때문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표시와 편법을 참가자들이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데서 성립한다면, 증명의 신뢰성은 도구의 물리적 제약에 있는가, 명령의 형식에 있는가, 아니면 같은 제한을 지키겠다는 공동의 약속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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